타자로 돌아온 하준호, 그의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타자로 돌아온 하준호, 그의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14일 롯데와 한화의 경기. 3회 말 선두 타자 정근우의 타구가 좌중간 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대로 펜스에 직격했다면 정근우가 3루까지 내달릴 수 있는 타구였다. 롯데가 1-0으로 간신히 이기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선두타자의 3루타는 사실상 동점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그런데 30미터를 넘게 달려온 좌익수가 팔을 쭉 뻗어 그 타구를 잡아내는 놀라운 수비를 보였다. 대전구장의 관중들은 아쉬움의 탄성을 자아냈고, TV를 보던 롯데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마운드에 있던 유먼도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빠른 발과 펜스를 겁내지 않는 플레이로 멋진 수비를 보여준 좌익수의 이름은 '하준호'였다.이날 선발 좌익수 겸 9번 타자로 출장한 하준호는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하지만 2번의 사구를 얻어 출루했고, 그 중 한 번은 만루 상황에서의 밀어내기 사구였다. 안타 없이 1타점을 기록한 것. 하준호는 9회에도 쉽지 않은 좌중간 플라이 타구를 잡아내며 이날 경기의 승리를 결정짓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냈다.하준호는 지난 7월 27일 1군에 등록된 후 꾸준히 출장기회를 얻으며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고 있다. 롯데는 붙박이 주전이 없는 좌익수 포지션을 두고 몇몇 선수들의 경쟁이 치열한데, 최근에는 하준호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위기다.
▲ 타격에서 각종 흥미로운 기록을 보여주고 있는 하준호 선수
현재 하준호의 시즌 타율은 2할1푼6리다. 37타수 8안타가 하준호의 올 시즌 성적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놀랍게도 득점권 상황에서는 10타수 4안타를 기록해 4할의 높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주자가 없을 때는 20타수 3안타에 그치고 있는 선수가 찬스 상황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준수한 선구안을 지녔다는 평을 들으며 출루율도 뛰어나다. 4할에 가까운 3할9푼6리, 월등한 수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타율을 고려해볼 때 상당한 성적임은 확실하다.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50타석도 채우지 못한 그가 몸에 맞는 볼이 벌써 3개라는 것. 팀 내에서 그와 같이 3개의 사구(死球)를 기록하고 있는 황재균, 박종윤 선수가 각각 414타석, 366타석에 들어선 것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수치임이 분명하다. 그만큼 그는 몸 쪽으로 파고드는 공을 피하지 않는 '깡'과 '근성'이 있다.그의 그런 성향은 수비에서도 드러난다. 1군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하이라이트 필름급 수비를 몇 차례나 연출했다. 대부분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전력질주하여 타구를 잡아내는 장면들.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범위와 함께 그의 근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하준호는 1군에서의 3번째 경기인 지난 7월 29일 두산전에서 평범해 보이는 뜬 공 타구를 놓친 적이 있다. 그리고 8월 15일 한화전에서는 승리를 내어주는 결정적인 수비실책도 했다. 이 때문에 '수비도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수비에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이제 막 1군에 올라온 신인이라 그런지 역시 안정감에서는 선배들에 비해 부족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때론 놀라운 플레이로 팬들에게서 박수와 환호성을 이끌어낸다.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그의 자신감과 이런 플레이는 그의 미래를 기대케 한다.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하준호가 지난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투수로 지명된 선수라는 것. 그것도 전체 2순위의 높은 순번에 지명된 초고교급 유망주였다. 경남고 2학년이던 2007년 청룡기 결승에서 6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당시 대회에서 4경기에 등판해 30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삼진도 45개(결승전 17개)나 뺏어냈다. 프로 관계자들이 이목이 집중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경남고 시절 역투하고 있는 하준호 선수
하지만 아쉽게도 프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군에서 2009년과 2010년 잠시 모습을 드러내 25경기에서 15.1이닝 동안 19실점하며 10.57이란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무려 18개의 4사구를 남발한 결과였다. 하준호 스스로도 본인의 제구력을 "최악"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을 정도다.결국 타자로 전향할 것을 결심한 하준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 앞에 나타났다. 본인 스스로도 투수보다는 타자가 훨씬 재미있고 편하다고 말한다. 아직은 타격에서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가끔씩 보여지는 재능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13일 사직구장에서 하준호를 만났다.
Q) 고2 초반까지 중견수였다가 이후 투수로 전향한 걸로 알고 있다.- 당시 학교에 투수가 없었다. 3학년 선배 투수가 부상이었고, 후배들 중에도 아픈 선수가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투수로 바꿨는데, 이상하리만치 잘 풀렸다. 사실 청룡기 때는 운이 좋았다.(웃음) 사실 드래프트에서도 투수보다는 타자로 지명될 줄 알았다. 청룡기 결과 때문에 투수로 지명된 것 같은데, 나도 처음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거짓말하지 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Q) 그런데 또 다시 타자로 돌아갔다.- 2010년에 1군에 올라오면서 각오를 했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투수는 포기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결과가 나빴다. 팔도 아프고 해서 수술하고 재활을 하다가 입대했다. 제대하기 얼마 전 윤동배 상동야구장 소장님이 부르더니 타자 전향을 권유했다. 나도 원하고 있던 일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Q) 현재 1군 기록이 가히 엽기적이다. 주자 없을 때는 20타수 3안타로 2할이 채 안 되는데, 득점권에서는 10타수 4안타 5타점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득점권에서는 이상하게 잘 맞는다. 사실 운이 좋은 거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리고 득점권 타율 이런 거 보다는 시즌 타율을 올리고 싶다. 주자 없을 때는 왜 그렇게 안 맞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 7/31 두산전에서 적시타를 때려낸 뒤 2루에 안착한 하준호 선수
Q) 1군에 올라온 후 만나는 투수들의 수준이 좀 달랐을 것 같다. 누가 제일 상대하기 어렵던가?- 니퍼트(두산)다. 공이 진짜 빠르더라. 2군에서 KT랑 할 때 2미터8센티의 시스코를 상대할 때도 어려웠는데, 니퍼트도 그랬다. 몸 쪽으로 던지길래 살짝 한번 째려봤는데, 그 후로 계속 153km/h 강속구를 던지더라. 결국 안타를 하나도 못 쳤다.Q) 사실 프로선수치고 큰 체구(174cm/78kg)는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남들보다 잘 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체구가 좋은 선수들보다 뭐든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게 힘들다. 체격이 좋은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힘이 좋다. 손아섭 선배를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도 그런 점이다.Q) 체격 때문인지 팬들 사이에서 '손아섭 아바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바타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닮고 싶은 선배다. 스윙 궤도 등에 대한 조언을 듣고 따라서 해봤는데 나랑은 잘 안 맞더라. 스타일은 다른 것 같다. 손아섭 선배는 중장거리 타자지만 나는 단타 위주의 타자다. 선배는 정말 야구만 생각하는 것 같다. 원정 갔을 때도 숙소를 찾아가보면 계속해서 비디오를 돌려보며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1년 내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 수훈 선수 인터뷰 중인 '10번' 하준호 선수
Q) 등번호가 10번이다. 이대호의 번호였던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달았고, 처음에는 주위에서도 별 말 없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 코치님이나 선배들로부터 '10번 달고 그것밖에 못하냐? 번호 바꿔라'는 농담을 자주 듣는다. 그래서 더 오기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잘하면 팬들도 내 이름이 적힌 10번 유니폼을 사줄 거라고 생각한다.Q) 팀 내에서 특히 많이 도와주는 선배나 친한 선수가 있다면?- 장성우는 고교 때부터 동기였다. 밥 먹으로 자주 같이 다닌다. 그 외에는 아직 특별히 친한 선수가 없다. 예전에 투수였을 때는 동문인 송승준 선배가 잘해줬는데, 지금은 팀 내 최고참격이라 말도 잘 못 붙이겠다. 조언 좀 들으려고 전준우 선배한테 다가갔었는데, 언젠가부터 외면하고 도망만 다닌다.(웃음)Q) 올 시즌 목표는 뭔가?- 올해는 20-20이 목표다. 20경기에 출장해서 20안타를 때리는 거다. 그런데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난 아직 내일이 없지 않나. 하루하루 결과를 내서 살아남아야 한다.Q) 야구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나?- 사실 학생 때는 못했던 적이 없다.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프로에 입단해보니 다르더라. 잘 못하니까 시합도 잘 못 나가고, 땡볕에서 볼이나 닦고 있었던 적도 있다. 한때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군대도 다녀오고 해서 생각하는 것이 좀 달라졌다. 한발 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입단 후에 새로 들어오는 신인들을 보면 예전 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하나 같이 자신만만한데, 그걸 보고 있으면 예전에 선배들이 우리한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더라.Q)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공 하나에 죽고 사는 선수, 말 그대로 '죽어라 하는' 선수로 팬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팬들께서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신다면 반드시 결과로 보여주겠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준호에게 경쟁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외야의 두 지점을 가리키면서 "저기 중간에 있는 사람이랑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죠"라고 답했다. 전준우와 손아섭을 가리킨 것이었다.유쾌한 성격과 은연 중에 드러나는 자신감. 하준호 같은 젊은 선수가 많이 나와줘야 롯데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 이미 하준호의 수비력은 롯데의 귀중한 전력이 됐다. 이제 남은 것은 방망이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 '죽어라' 하는 그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타자로 시작해 투수로, 그리고 다시 타자로 돌아온 하준호. 그는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야구 인생이었지만 지금까지 환희, 아픔, 좌절의 순간들을 모두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 때와는 조금 다른 자세로 도전하고 있다는 하준호, 그의 진짜 야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김홍석(롯데자이언츠 칼럼니스트)